1집과 2집을 2년 터울을 두고 발표하고 나서, 새로운 작업은 4곡이 수록된 EP 앨범 '1/10' 이었습니다. 사실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정규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컸었는데 말이죠. 원래는 3집이 되었어야 했는데...
물론 그 전에도 '앵콜요청금지' 를 EP로 발표하기도 했고, 중간중간 싱글~EP 정도의 볼륨을 갖는 작업물을 발표했었습니다. 처음 도전하는 밴드로서 당시에 EP라는 형식이 의미가 있었고(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가 든다는 장점이 있고, 너무 힘을 주느라 데뷔앨범이 늦어져서 시기를 놓치는 밴드가 많았음), 밴드 주변의 변화가 많던 시기에 조금 느슨한 작업을 발표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생각하던' 3집은 후반부의 절반의 완성도에 비해 앞부분의 완성이 더딘 상태였고('속물들' 같은 노래가 그 당시에 이미 상당부분 구상이 끝났음에도) '이른열대야' 공연이 성공하면서 에너지가 많이 들었던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연간 3~4달 정도가 단독공연 일정이나 준비기간이었음) 배우 한효주님과 함께 작업하게 되는 계기도 생기면서 음반 발매를 서두르게 되었죠.
그 뒤로 육아휴직? 을 하면서 밴드가 휴식기를 갖게 됩니다. 저는 '흐린 길' 이라는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의외로 괜찮은 앨범이니 한번 들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요즘 노래들과는 좀 결이 다르지만. 뭔가 저로서는 한 시기가 마무리되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네요.
'1/10' EP 가 2012년 발표되었고, 브로콜리너마저의 복귀 음반은 2016년의 싱글 '천천히' 였습니다. 그 사이에 여러가지 트렌드와 환경도 변화했는데요. 앨범단위의 음반 발표보다는 싱글 공개를 자주 함으로써 더 많이 신보를 공개하는 분위기가 되었죠. CD같은 매체도 점점 더 발표하지 않게 되었고. 저희는 한곡 한곡 쌓아가며 3집을 완성해야겠다 생각하고 1년 사이 7곡의 싱글을 발표하며 여러가지 콘텐츠 제작에 더 많은 힘을 쏟았지만, 오히려 음반을 구성하는 일이 좀 더 어렵게 느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2년정도 절치부심 해서 새롭게 쓴 곡들로 3집 '속물들' 을 발표하게 되었는데요, 앨범을 발매하고 5년차가 되어가는 시점에 돌아보면 8곡으로 끝나고 만 것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좀 러닝타임을 길게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시간 가까이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면 좋지 않을까요.
아직 저희는 시디를 꾸준히 내고 있기는 한데요, 이제는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것이 대세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듣는 편이니까요. 그래도 좋아하는 팀의 신곡이 나왔을 때 한 곡 듣고 나서 끝나버리는 것은 왠지 좀 아쉽더라구요. 틀어놓고 조금 집중하지 않더라도 길게 듣고 틀어 놓을 수 있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브로콜리너마저가 1집을 내기 전에 언니네 이발관의 5집이 발매되었는데요, 그때 이석원씨가 했던 말이 '좋은 음질로 순서대로' 들어달라는 이야기였지요. 그때 저는 그 말이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고 발매되던 날 바로 아이팟에 리핑을 해서 밤길을 걸으며 들었습니다.(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젤 좋은 헤드폰을 썼지요) 지금 브로콜리너마저의 4집을 발표하면서 비슷한 말을 한다면, 그냥 앨범 전체를 틀어놓아달라는 말 정도를 할 것 같아요. 좀 집중하지 않고 듣더라도 괜찮으니까 말이죠. 스마트폰 스피커로 그냥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곡을 쓰면서, 편곡을 하면서 의미있는 시간도 많았지만 사실 그냥 흘려보낼 수 밖에 없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동전이 혹시 떨어져 있나 동네를 돌아다니는 초등학생 처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떤 때는 하루종일 해가 지고 새벽이 올 때 까지 다니고서야 뭔가 주워 올 때도 있었지요.
문 밖을 나오는 순간 많은 것이 다가오는 산책길도 있겠지만, 대개는 한참을 돌아다니다 생각치 못하게 만나는 인연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곡을 만들 때 들었던 영감은 창밖을 보며 버스를 타고 다닐 때 주로 건져왔던 것들이지요. 그러니까 한시간 정도 노래를 틀어놓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주실 수 있다면, 타이틀곡 한곡만을 클릭해서 들었을 때 보다 여러분도 뭔가를 줍게 될 확률이 높을겁니다. 그리고 저희는 봄소풍 보물찾기에 온 친구들을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그 안에 놓아두었거든요. 왠만하면 무엇인가를 찾아 갈 수 있게.